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도이 쇼스케 (문단 편집) == 지도자 시절 == [[파일:external/www.jiji.com/photo04l.jpg|width=250]] [[롯데 오리온즈]] 코치 시절[* 1969~1972년 당시 롯데의 유니폼은 팔 왼쪽의 오리온즈 로고와, 앞면의 LOTTE 로고를 빼곤 아무것도 없는 단색 유니폼이었다. 이후 1973년 시즌부터 [[지바 롯데 마린스]]로 바뀌기 전까지 [[롯데 자이언츠]]와 같은 디자인의 유니폼을 착용했다.] 은퇴 후 [[오사와 케이지]], [[카네다 마사이치]] 감독 휘하에서 [[롯데 오리온즈]]의 스카우트와 코치, 2군 감독으로 재임했고, 1974년 롯데의 [[일본시리즈]] 우승에 한 몫 했다. 1975년 한국 [[롯데그룹]]이 [[한국실업야구|실업야구]] [[롯데 자이언트]]를 창단하면서 롯데 오리온즈에 코치 파견을 요청해 왔고, 이듬해인 1976년 도이 코치를 보내면서 한국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실업 롯데 코치 시절 그는 도이 쇼스케라는 본명을 썼지만, 1984년 롯데 자이언츠의 수석 코치로 한국에 들어왔을 때부터는 도위창[* 한자는 都偉彰. 성과 이름의 앞글자는 본명 발음에서, 뒷글자는 본명의 이름자에서 따온 것.]이라는 한국 이름으로 선수들을 지도하였다. 1980년 일본으로 돌아간 도이는 다시 [[롯데 오리온즈]]의 스카우트와 2군 감독을 역임했고, [[KBO 리그|한국프로야구]] 출범으로 실업 롯데가 해체되고 프로팀으로 재편된 [[롯데 자이언츠]]가 도이 쇼스케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1984년 시즌 정식 감독에 취임한 [[강병철]][* 1983년 시즌 중 [[박영길]]이 감독에서 해임되며 권한 대행으로 그해 시즌을 마쳤다.]이 코칭스태프를 구성하면서 한국 생활 경험이 있는 도이에게 코치로 오지 않겠냐며 제의했는데, 도이는 이를 수락하여 다시 롯데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도이는 선수들의 기술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키며 롯데가 그해 [[1984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거두기까지 수석 코치로서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였다.[* 참고로 이 때 롯데는 6개 구단 중 투수코치가 없는 유일한 팀이어서 도이가 투수코치 역할까지 대행했다. 도이의 회고에 따르면 [[1984년 한국시리즈]] 7차전 당시 컨디션 점검 차 마운드를 방문한 도이에게 [[최동원]]이 "코치님 배가 고프네요"("힘이 드네요"라는 의미로 말한 듯)라고 하자, 도이 코치는 "아 그래? 이제 2이닝도 안 남았다. 힘을 내거라!" 라고 격려해 주었다고 한다.] 당시 감독이던 [[강병철]]이 이후에도 "1984년의 우승에는 도위창의 역할이 컸다" 고 공공연히 말했고, 선수로 뛰던 [[김용희]] 또한 "도위창 코치는 누구보다도 야구에 대한 열정이 뜨거웠고, 야구를 보는 눈이 굉장히 예리했다" 라고 존경의 뜻을 표할 정도였다. 1986년 시즌 후 강병철이 계약 만료로 물러나면서 감독으로 취임한 [[성기영]] 밑에서 1시즌을 더 코치로 활동한 도이는 1987년 시즌을 마치고 [[롯데 오리온즈|일본 롯데]]로 복귀하여 1988~1989년 수석 코치를 맡았지만 팀은 2년 연속 최하위에 그쳤다. 이후 1990년 롯데 자이언츠 코치로 다시 한국에 왔는데, 감독이던 [[김진영(1935)|김진영]]이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으로 중도 퇴진하면서, 도이가 감독 권한 대행으로 잔여시즌을 마무리하였다. ||<-5> {{{#ed1c24 '''역대 전적'''}}} || || '''팀''' || '''경기''' || '''승''' || '''패''' || '''무''' || || '''총계''' || '''24''' || '''8''' || '''15''' || '''1''' || 그해 시즌 후 롯데의 후임 감독으로 일본과 한국에서의 경험이 풍부한 도이를 정식 감독으로 올리려는 구단의 검토가 있었고 실제로 롯데가 [[한국야구위원회|KBO]] 측에 "규정 상 외국인이 감독을 맡으면 안 된다는 내용이 있는가?" 라고 정식으로 문의하자 KBO는 그런건 규정에 없다고 회답했다는 얘기도 있다. 그렇지만 당시 야구계 정서상 외국인 특히 '''일본인'''이 감독 자리에 오르는 것은 용납이 어려웠던 시기라[* 그래도 롯데는 도이 쇼스케 이후 1990년대 초반 [[미국]]인 코치 [[조 알바레즈]]를 영입했었고, 후일 도이 쇼스케 이후 최초의 정식 외국인 감독인 [[제리 로이스터]]를 비롯해 [[래리 서튼]]을 감독으로 영입하는 등 감독의 문호를 외국인에게도 열어젖히는데 그나마 가장 적극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빙그레 이글스]] 코치를 그만둔 [[강병철]]이 감독으로 재영입되었다. 도이는 다시 강병철과 함께 2년을 롯데에서 활동했고, 1992년 두 번째 [[1992년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 우승의 감격을 맛본 후 그 해를 마지막으로 한국 야구와의 인연을 접었다.[* [[1992년 한국시리즈]] 항목에 나와있는 우승 당시 선수들에게 헹가래 받고 있는 사람이 바로 도이 코치이다. 강병철 감독과 함께 롯데의 단 두 번 밖에 없는 우승을 견인한 지도자로서 올드 롯데 팬들 및 선수들에게는 그야말로 각별한 존재였다. 한국프로야구 지도자의 마지막 시절을 우승으로 장식하며 말 그대로 박수칠 때 떠났다.] [[파일:cRL8U5G.jpg|width=350]] [[대만 프로야구]] [[슝디 엘리펀츠]] 코치 시절. 1993~1997년까지 [[슝디 엘리펀츠]] 타격 코치 등 [[대만 프로야구]]에서도 지도자로 활약하며 한국, 일본, 대만 3국의 프로야구를 전부 경험하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